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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그래 우리 검푸른빛 고래 유영하던 밤에


삶이 투명한 물거품 아래로 둥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요? 

나는 가라앉아요. 산소가 닳으면 귀를 닫아요. 




그날에는 풀잎 새로 겨울 냄새가 났다. 지난밤 내린 빗물의 여파로 발자욱이 질걱거리던 날. 희뿌연 대기 중에 산소 거품이 방울졌다. 길을 가는 사람들마다 제각기 아가미 같은 입을 뻐끔거렸다. 눈을 돌리면 거대하고 투명한 돔 형태의 유리 벽들, 경계를 피해 발뒤꿈치를 들었다. 습기 가득한 공기가 뺨에 늘러붙었다. 계절이 겨울의 초입에 들며 길고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B는 옷깃을 여미고서 공기 중으로 희끄무레한 거품을 내뱉었다. 곧 벽에 막혀 조각날 허튼 숨에 코가 시렸다. 사유 속에 침잠하고 있노라면 언제나 숨이 막혔는데, 그것이 편히 발 딛고 설 단단한 기반이 없음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혹은 욕조 밖 넘쳐나는 물에 잠겨 질식하듯 범람하는 생각에 호흡의 기능이 한눈을 파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나뭇가지 앙상한 가로수가 몇 차례고 그의 옆을 지났다. 의미 없이 다리를 굴리면 눈을 끔뻑일 때마다 배경이 달라졌다. 회색빛의 시멘트 건물과 붉은 담벼락, 빛바랜 누런색 플래카드와 누더기가 된 잿빛 광고지. 이윽고 시야의 가장자리에 선명한 검푸른 색 몸짓이 새겨졌다. 진파랑 코트를 걸친 A의 형태, 익숙한 일탈이었다. 존재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라지만, A는 저보다 반 뼘이 컸고 그 덕에 길쭉하고 호리한 몸선이 동작을 갖출 때마다 시선 속에 뚜렷이 박혔다. 목덜미 위쪽으로 올라붙은 그의 짧은 머리칼. 그는 이따금 뽐내듯 앞머리를 쓸어넘겼는데, 삐져나온 머리칼 두어 개가 이마 위로 흐트러질 때면 한쪽 볼 가운데 옴폭 들어간 보조개가 보기 좋게 자리했다. 입술을 벌려 웃으면 드러나던 덧니, 그가 꽤나 거슬려 하던 그것을 B는 퍽 좋아했다. 양 뺨이 붉어진 채로 전봇대에 기대 서 있던 A가 몸을 바로 세워 코트 깃을 매만졌다. 가뜩이나 흰 피부가 지금은 얼음장마냥 싸늘해 보였다. 곧 젖은 밑창 발자국 커다란 발 보폭이 둥글게 선회했다. 순환하는 걸음, 푸르고 긴 코트가 살랑이자 과거의 밤바다가 일렁였다. B는 그 형태에 언젠가 그가 꿈꾸듯 되뇌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고래가 되고 싶어.

 


고래, 그는 고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막 학교가 끝난 참이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분다. 적막이 내려앉은 교실에서 그가 창문 밖 푸른 하늘 너머로 팔을 길게 뻗는다. 거대하고 완만한, 검파랑 지느러미가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있지, 고래가 바닷물을 들이마시면 바닷물이 반쯤 준대. 진짜는 아니고 그만큼 커다랗다는 말이겠지만. 고래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들어봐. 거대하다는 건 말이야, 완전하다는 거야. 힘이 있으면 외부의 자극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거든.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도, 공격을 당할 걱정도 없이. 그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지. 나는 뭘 좋아하는지부터, 내가 하고 싶은 건 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유영해나가고 있는지, 누굴 보호하고 싶은지, 생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인지. 폐로 호흡을 해야 함에도 바닷속 깊이서 살아갈 수도 있고, 타인이 살아내기 위해 선택한 길과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지. 살아내는 건 지겨워, B야. 그건 삶이 아니지. 죽지 않기 위해 잇는 호흡은 결코 생이 아니지… .


B는 잠시 숨을 멈춘다. A의 눈빛은 실체 하는 것들 너머, 그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 더럭 겁에 질려 작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웃는다. 미안, 이상한 얘기를 했지. 그래도 고래가 되고 싶다는 말은 진짜야. 웃음기 배인 말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무슨 의도일까? B는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외면을 자행하고 도피를 망상했음에도, A와 같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도 결국 도피의 일종인 걸까? 혹은 저와는 다른, 셀 수 없는 고민과 침잠 끝의 버거운 결론이었을까? B의 눈에 A는 언제나 여유로웠고, 그를 떠나더라도 타인과 동일시 할 수 없는 그만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웃지 않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또래의 웃음소리 가득한 곳과는 퍽 이질적이었는데, 그는 체온과 땀, 호흡과 생명력과 소음이 가득한 일상의 교실보다는 일과가 정리된 후 누구도 발 들이지 않을 텅 빈 교실에서 홀로 서성이는 것이 훨씬 어울렸고, 우유 냄새와 햇볕 따스함 가득한 요람보다는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들이찬 광야를 고향으로 두고 있을 법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A는 ‘그 애’였다. 그 애, 왠지 모르게 친해지기 힘들어… . 아니,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고. 그 애 말야, 겨울철만 되면 언제나 푸른색 코트를 입고 있더라. 왜, 그 애 있지, 우리 반에. 이번에도 백 점이래. 그 애? 착하지. 근데 그것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B는 A를 그 애라고 부르지 않는 유일한 이였지만, 그렇다고 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B는 A가 좋아하는 책을 알았고 즐겨듣는 음악을 알았으나, 그가 사랑하는 순간들, 이를테면 눈가를 좁히며 한참이고 말없이 응시하는 해 질 녘에 대해서나, 침묵과 더불어 높게 치든 고개를 내리지 않는 이른 새벽녘, 오래도록 잠들지 않고 무언가를 적어내리던 늦은 밤에 대해서는 오직 짐작만 할 뿐이었으며, 그의 가정사나 과거, 누군가를 사랑했고 누군가를 미워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체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현재의 구체적인 감각뿐이었다. A가 구겨진 교복 치마의 주름을 툭툭 떨쳐 펴며 일어선다. A는 언제나 B를 잘 알았다. 어쩌면 B가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더. B가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 잘 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A는 B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A는 대부분의 사람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선천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비상한 눈치와 감각의 덕도 있겠으나, A에게는 대화를 나눌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 기이한 능력이 있었다. 아이들은 A에 대해 불편해했으면서도 막상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런 기색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B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여타 아이들과 그가 다른 점은, B가 A에게 품은 감정이었다. B의 긴 머리칼이 창밖 불어온 바람에 헝클어져 시야를 가렸다. 그 틈새로 A가 웃었다. 


B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가 십사 층을 외친다. 문 닫힌 텅 빈 복도에 빛이 들었다. 곧 공허한 공간 속으로 발소리가 타박인다. B는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퍼지는 삑삑 소리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 내부, 온갖 소음이 향하는 귀결지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B는 익숙한 걸음으로 신발을 벗어제끼고서 곧장 제 방으로 향한다. 유일하고 얄팍한 도피처. 저 너머로 가방을 풀어 던지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우면 몸이 커다랗고 쓸모없는 살덩어리마냥 힘을 잃고 늘어진다. 꼭 건조대에 늘어진 빨래 더미 같다. 오늘은 뭘 했더라? 머리가 멍멍하다. 미적지근한 흙탕물이 사고를 탁하게 흐린다. 아무리 시점을 되돌려도 떠오르는 것은 없다. 뿌옇고 흐린 잔상들뿐이다. 일곱 시 사십오 분에 학교에 도착해서 열두 시까지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서… 누구랑 먹었지? 점심 메뉴는 뭐였더라? 도서관에 들렀나? 한 시 십 분에 교실에 앉아서 다섯 시까지 수업을 마저 들으면… 청소, 청소는 했었나? A의 차례라 내가 기다렸던가? 저녁은 먹은 것 같은데…. 일순간 위가 경련한다. 목구멍이 턱 막힌다. 잔뜩 상처 난 점막에 산성 용액이 들러붙어 내벽을 녹인다. 무언가 주머니를 잡아채어 비트는 듯하다. 아아, 아아아. 비명이 나오다 말고 귀 뒤로 먹혀들었다. 현실이 날카롭게 둥근 막을 찢는다. B가 용케 세워둔 경계다. 이를 아득 문다. 잇몸은 중압에 허물어지고 입안 벽이 길게 부푼다. 몸을 둥글게 말자 복통이 가라앉는 체, 낚시질해댄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길다란 머리칼이 축축한 얼굴에 이리저리 말려 붙는다. 늘상 겪는 고통이지만 겪을 때마다 익숙해지질 않는다. 누가 무뎌짐을 익숙함이라 표현했던가. 멍청한 소리다. 결코 견뎌낼 수 없는 것들은 무디어지는 것이 아니라 얄팍해지는 것이다. 더 이상 깎아낼 곳이 없을 때까지, 가느다란 실 밧줄로. B는 마지막으로 두어 번 구역질을 토해내고서 대자로 뻗어 누웠다. 그 오랜 시간 앓았음에도 실내는 여전히 정적이다. B는 소음을 죄 집어삼키는 이 집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다. 눈을 감는다. 모래알이 들어간 듯 꺼끌거리는 눈꺼풀 밑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입을 얕게 벌리면 마룻바닥 부터 차오르는 밭은 소리. B는 문득 고래를 떠올린다.



“씨발, 내가 아주 만만하지?”

“미친년이 말을 그딴 식으로 해? 밖에서 처먹을 거 다 처먹고, 할 거 다 하고 오면서 왜 지랄이야?”



B는 소음에 눈을 뜬다. 부모님이다. 숨을 죽이고 책상 가에 가 앉는다. 문제집을 펴고 펜을 들었다. 글씨로 보이는 검은 자욱들이 눈에 하나도 새겨지지 않는다.



“그러는 너는. 너는 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왜. 내가 나를 위해 살아? 너랑 애 위해 살아. 그 뒤치다꺼리 다 하면서. 나, 오늘 한숨도 못 쉬고 일만 하다 왔어. 말을 할 때마다 입이 바싹바싹 말라. 하루종일 걸어서 다리는 다 붓고, 목은 다 쉬어 터져서 제대로 소리도 못 내. 이게 할 거 다 하고 온다고? 종일 그 고생을 하고 오면 남편이라는 새끼는 누워서 처자고 있고, 집안 꼴은 개판이고, 나도 사람이야.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들고 너만 일해? 차라리 결혼하지 말 걸 그랬어. 그 때는 내가 너보다 잘 나갔어, 알아?”



B는 이 대화의 결말을 안다. 아버지의 윽박지름과 어머니의 피에 젖은 성토로 이루어진 대화의. 실컷 서로를 뜯어먹은 그들은 곧 저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품평질을 해대다 제각기 방에 들어앉으리라. B는 제게 형제자매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이라도 있었다가는 제가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이윽고 말소리가 사그라든다. B는 밀린 설거지를 했다. 제 잘못이다. 시간이야 제가 제일 남아돌았으므로. 어째서 저는 늘 누군가를 착취하면서만 살아갈까? B는 거품을 씻어내며 제 어릴 적을 떠올린다. 지금보다 철없던 시절, 자신의 붕괴를 모두 부모의 탓으로 돌리던 때를. B는 이것이 다 스스로가 자초한 것임을 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잔소리면 족하지, 맞지 않는 게 어디야. B는 우는 어머니의 모습과 저를 때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동일인으로 생각지 못해 몇 번이고 악을 쓰던 저를,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는 대들 생각을 못 하던 저를 안다. 언제나 강자에게는 화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근원에는 아버지가 자리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에도. B는 어머니가 저를 위해서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가 응당 받았어야 했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곧 그도 똑같은 피해자라는 생각에 원망을 포기한다. B는 젖은 손으로 눈을 부빈다. 밀려오는 생각들에 넌덜머리가 났지만 동시에 연민과 자책이 밀려든다. 곧이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옳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엄습해서 B는 또다시 회피하기로 했다. 방으로 들어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윽고 고래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걸 말하던 A의 표정도. B는 A가 고래가 된다면, 거대한 흰수염고래가 되리라 생각한다. 홀로 대양을 누비는 대왕고래.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떤 모습도 떠오르질 않았다. 혹등고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먹잇감이 될 크릴 외에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베개가 흠뻑 젖어서 B는 그만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불을 끄듯 생각하기를 그만둘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안개 끼듯 스러지리라는 것은 알았다. 곧 암전이었다.





날이 추웠다. 외투를 여러 겹 걸쳐도 노출된 맨 살갗이 시려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B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했는데, 인기척 없는 학교를 낯설어하며 문을 열자 한산한 교실 한가운데 A가 이어폰을 끼고 앉아 있었다. 가방을 걸며 자리에 앉자 열중한 A의 얼굴이 보인다. 거스러미 인 채로 죄 터진 입술이 눈에 밟혔다. 신경 쓸 힘이 없어 책상에 엎드린다. 차갑다. 밤새 식은 합판의 냉기가 살을 타고 올랐다. 그럼에도 금방 잠에 들 것을 안다. B의 수면은 간헐적이고 불규칙했다. 밤새고 잠이 오지 않았다가, 겨우 드는 얕은 잠은 꿈으로 가득했다. B는 교실에 앉아 문제를 푸는 꿈을 꾼다. 삼 분이 남았는데 문제는 여즉 반도 못 푼 채다. 이를 악물고 펜을 놀리고 있으면 언제부터인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웃음소리를 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시험은 끝나있다. 비웃음으로 둘러싸여 당혹감에 자리에서 일어서면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Tu crois le tenir, il t'évite, 알아듣지 못할 카르멘의 아리아가 고조되며 머리를 울렸다. L’amour! 터져나오는 하이라이트와 동시에 거대한 거울이 티브이에서 본 연예인의 목소리를 흉내 내 조잘댄다. 네가 할 줄 아는 건 뭐야? B는 곧 코피를 쏟아낸다. 교실 문을 박차고 나오면 B의 아파트다. 피가 멎지 않는 코를 틀어막고 계단을 뛰어오르다 잠에서 깨면 온 몸이 축축하다. 언제나 그런 식이다. 일교시 종이 쳐서 B는 쪽잠에서 깼다. 책상 서랍에서 책을 꺼냈다. 첫 교시는 과학이었다.


B는 타인을 관찰하기는 좋아하나, 배려하는 법은 잘 몰랐다. 선천적인 졸렬함에서 기인했다고, B는 스스로를 평한다. 그래서 B는 A가 종일 단 한 번도 웃지 않는 것을, 늘 입던 교복 치마가 아닌 긴 체육복 바지를 입고서 셔츠 밑에는 검은 목폴라 티를 받쳐 입은 것을, 언제나 조용하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잠든 적은 없었던 그가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던 것을 알았음에도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다. 어쩌면 자신의 문제에만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득 B는 A가 금세 생을 살아내길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잔뜩 내몰린 탓에 떠오른 극단적 상상이리라, B는 그 생각을 그리 치부하기로 했지만, 어머니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위태함이 A를 보면 자꾸만 겹쳐졌다.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던 A의 얼굴, 자그마한 충돌에도 밀린 둑의 기반이 튿어 흐를듯한. 아아, B는 곧 A를 붙잡고 울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야? 뭐가 잘못된 거지? 너는 괜찮은 거니? 아니, 괜찮지 않을 걸 아는데, 나는 뭘 해야 하지? 내가 뭘 한다고 네게 도움이 될까? 결국 B는 단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만다. 그만의 세상에 발을 들이기가 겁이 났다. 자신의 생도 건사하지 못하는 제가 그의 찬란한 진창일 세계의 한 축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아닐 것이다. A가 제 세계의 한 축을 차지할 수는 있으나, 저는 A의 생애에 결코 그럴 수 없다. 손이 떨림을 멈추지 않고 반쯤 찬 공책에 엇나간 선을 그려댄다. 별일 아닐 것이다. 그러나 B는 낯선 성인 남성을 보면 긴장해 굳던 A의 육체와 흉터로 가득하던 치마 밑 맨다리를 알았다. 목덜미에 머리칼이 닿는 것이 싫어 가위로 제 머리를 잘라내던 A의 푸념을 알았다. 상처를 가리키면 어색하게 웃던 A, 짓이겨 잇자국 나던 부르튼 입술도, 걷어 올린 손목 위로 붉고 푸르게 물든 흰 피부와 피가 날 때까지 깨물던 손톱들과 몇 번이고 거듭 씻어 다 갈라 터진 손등도. 곧 손을 올리던 제 아버지와 방치하던 타인들이 떠오른다. 앳되어 보이는 A가 긴 머리를 들어 식칼을 댄다. 날 선 금속이 살갗 위로 아슬하다. B는 그것이 언젠가 제가 들어올렸던 것임을 인지한다. 











갓 태어난 고래에게는 백상아리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천적들. 고래는 폐로 호흡을 해서, 질식하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있으면 곧바로 수면 위로 헤엄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어미가 새끼 고래를 밀어 올린다. 작은 지느러미가 광대한 공기의 돔을 향해 물살을 가른다. A를 수면 위로 밀어 올려줄 어른은 어디에 있었을까? 해면에서의 최초의 호흡을 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아이들, 우리는 수면 위로 호흡하려다 산소 대신 페트병을 폐부에 가득 채우고서 천천히 질식해나간다. B는 풀잎 새로 나는 겨울 냄새를 헤치고 천천히 밀려나는 밤바다의 파도를 좇아 달린다. 



B야, 그거 알아? 고래는 종종 밀물을 따라 해안에 왔다가 썰물을 따라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대. 왜 고래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지만, 누군가는 그랬어. 머릿속에 있는 나침반이 고장 나 자신의 위치나 행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B야, 나는 가끔 내 나침반을 영영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B는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숨결로 된 거대한 거품막으로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얇고 견고한 장벽, 발뒤꿈치를 들어야 겨우 그사이를 지날 수 있는. 행인들이 저마다 개개인의 거품을 뻐끔인다. 누군가는 작고 누군가는 크다. 누군가는 얇고 누군가는 두껍다. 숨이 턱 끝까지 찬다. 물결이 찰랑여 목을 옥죄었다. 무지갯빛으로 흐려진 눈을 비벼 시야를 확보하자 검푸른 파도가 심해로 철썩인다. 물거품으로 된 거대하고 둥근 돔을 뚫고 흰수염고래의 커다란 몸집이 솟아올랐다. 


찬란토록 아름다운 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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